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와우치 히로시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[[가고시마현]] [[가고시마시]]에서 태어나 라사르 중학교, 라사르 고등학교를 거쳐 [[와세다대학]] 경제학과를 졸업했다. 라사르 중고교는 서일본 굴지의 명문고로 이 학교 후배 정치인으로 [[시오타 고이치]]와 [[후루카와 요시히사]] 등이 있다. 졸업 후 다이와은행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오쓰키 호텔[* 처조부인 야마다 야이치가 창업한 여관이다.]의 임원으로 근무했다.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[[일본신당]]으로 고향인 가고시마현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. 이후 [[신당 사키가케]]를 거쳐 민주당에 합류해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[[가고시마현 제1구]]에 출마하지만 지역구 당선에 실패하고, 대신 석패율 비례대표로 구제되어 당선되면서 원내에 입성한다. 이후 42, 43, 44회 총선거에서도 가고시마현 제1구에 출마해 지역구 당선은 못하고 석패율 구제로 계속 생환하면서 4선을 기록한다. ~~그래도 [[아베 도모코|석패율 구제로만 6선을 기록한 같은 당 동료 의원]]보다는 나은 편이다~~ 그리고 민주당 돌풍이 불었던 [[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 이르러서야 가고시마현 제1구에서 당선되면서 5선을 기록한다. 하지만 얼마 안 가 제46, 47회 총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다시 2차례 낙선하면서 원외 인사가 되었다. 이후 [[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 [[입헌민주당(2017년)|입헌민주당]] 소속으로 다시 가고시마현 제1구에 출마해 1% 차이로 자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약 5년 만에 원내에 복귀했다. 원래 지역구 터줏대감이던 자민당의 야스오카 오키하루 의원이 출마를 앞두고 [[췌장암]]으로 인해 정계를 은퇴하는 바람에, 장남을 급하게 입후보시킨 것이 가와우치에게 당선의 기회가 되었다. 게다가 야스오카의 장남은 급하게 출마하느라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도 못해서(...), 석패율이 97%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낙선했다. 그리고 49회 총선에서는 원래 3구 의원이었던 자민당 미야지 다쿠마가 옮겨왔고 그에게 패배해 비례 부활도 못하고 낙선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